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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인물 탐구

페이스북부터 메타까지, 마크 저커버그의 도전기

by 유빈의 비전보드 2025. 4. 20.

마크 저커버그의 얼굴 그림

 

 

 

마크 저커버그는 단순한 IT 창업자가 아니라, 연결이라는 키워드로 세상을 바꾼 인물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의 창업기부터 현재의 메타버스 도전까지를 정리합니다. 2004년 하버드 기숙사에서 시작된 페이스북은 20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 30억 명 이상이 사용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했습니다. 저커버그는 단순한 소셜미디어를 넘어 AI, 가상현실, 메타버스 등 미래 기술에 끊임없이 투자하며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도 중심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데이터 유출, 가짜뉴스 논란, 주가 하락 등 수많은 위기를 겪으며 그는 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마크 저커버그가 어떻게 페이스북을 만들었는지, 어떤 방식으로 회사를 성장시키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 그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차분히 살펴보겠습니다.

 

목차

1. 하버드 기숙사에서 시작된 연결의 꿈

2. 페이스북의 폭발적 성장과 논란

3. 메타버스와 AI로 확장된 그의 비전

4. 마치며

 

 

 

1. 하버드 기숙사에서 시작된 연결의 꿈

마크 저커버그는 1984년 뉴욕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는 치과의사와 정신과 의사였고, 어릴 때부터 컴퓨터에 흥미를 보였다고 합니다. 중학생 때 BASIC 언어로 게임을 만들고, 고등학생 때는 음악 추천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만큼 기술적 감각이 뛰어났습니다. MIT나 스탠퍼드 대신 하버드를 선택한 것도 당시 그의 관심사가 기술뿐 아니라 사람과의 연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버드 입학 후, 그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며 기숙사에서 소규모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이 중 하나가 '코스매치(CourseMatch)'로, 학생들의 수강 패턴을 기반으로 수업 추천을 해주는 서비스였습니다. 또 하나는 '페이스매시(FaceMash)'라는 프로젝트였는데, 하버드 재학생들의 얼굴을 나란히 보여주고 누가 더 매력적인지를 비교하게 하는 사이트였습니다. 이 사이트는 서버가 터질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지만 초상권과 프라이버시 논란으로 학교로부터 제재를 받게 됩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커버그는 사람들이 ‘연결’되는 것 자체에 강한 흥미와 반응을 보인다는 점을 깨닫습니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학생 신상 정보, 프로필 사진, 관심사 등을 공유할 수 있는 작은 온라인 플랫폼을 기획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2004년 2월, 하버드 대학 기숙사 방에서 만들어진 ‘더 페이스북(TheFacebook)’입니다. 초기에는 하버드 학생만 가입할 수 있었지만 그 안에서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예일, 스탠퍼드, 컬럼비아 등 아이비리그 전체로 퍼졌고, 이후 미국 전역 대학생들이 줄줄이 가입하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VC의 관심도 높아졌고, 저커버그는 학업을 중단한 채 실리콘밸리로 내려가 본격적인 창업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때 그가 내세운 비전은 단순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 저커버그는 친구 관계를 맺고, 관심사를 나누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데 집중했습니다. 다른 SNS들이 단순한 게시판이나 커뮤니티 수준에 머물던 때, 페이스북은 실명 기반, 친구 중심의 구조로 현실 세계와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시도로 평가받았습니다.‘기숙사에서 시작된 아이디어’는 이후 전 세계를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합니다. 하지만 이 아이디어가 어떻게 수십억 명의 삶을 바꾸는 플랫폼으로 진화했는지는 다음 이야기에서 본격적으로 살펴보게 됩니다.

 

 

2. 페이스북의 폭발적 성장과 논란

페이스북은 하버드에서 시작한 지 불과 몇 년 만에 미국 전역의 대학생들을 사로잡으며 급속히 확장되었습니다. 2006년에는 누구나 가입할 수 있도록 개방되었고, 이 시기를 기점으로 페이스북은 명실상부한 글로벌 SNS 플랫폼으로 도약하게 됩니다. 저커버그는 "우리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연결한다"는 미션을 중심으로 플랫폼의 구조를 계속 확장해나갔습니다.

뉴스피드(News Feed) 기능의 도입은 사용자 경험의 대전환이었습니다. 단순히 친구를 찾고, 글을 남기는 수준에서 벗어나 실시간으로 친구의 활동을 받아보는 구조는 소셜미디어의 본질을 바꾸었습니다. 사람들은 매일같이 페이스북을 켜고, 타인의 일상과 자신의 근황을 공유하며 디지털 정체성을 형성하기 시작했습니다. 2007년에는 플랫폼 API를 개방해 타사 앱과 개발자들이 페이스북 안에서 서비스를 만들 수 있게 했고, 그 결과 수많은 소셜 게임과 앱이 등장했습니다. 이는 페이스북의 사용자 체류 시간을 늘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비즈니스 모델도 ‘광고 기반’으로 전환되면서 매출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성장은 부작용도 함께 낳았습니다. 2010년대 중반부터 페이스북은 ‘개인정보 침해’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8년의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사건입니다. 수천만 명의 사용자 데이터가 동의 없이 수집되어 정치 광고에 활용되었다는 사실은 세계적인 충격이었고, 이후 저커버그는 미국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직접 해명을 해야 했습니다. 또한 페이스북은 가짜뉴스 유통의 온상이라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알고리즘이 자극적인 콘텐츠를 우선적으로 보여주고, 확증 편향을 강화하며 사회적 분열을 유도했다는 비판은 플랫폼의 책임론으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러시아의 선거 개입 의혹이 페이스북 광고와 연결되면서 저커버그는 거센 정치적 압박을 받게 됩니다. 이런 논란 속에서도 페이스북은 인스타그램과 왓츠앱을 인수하며 소셜미디어 제국을 확장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기술력보다 ‘신뢰’였습니다. 사용자들은 더 이상 단순한 플랫폼이 아닌 ‘사람들의 데이터와 일상을 관리하는 기업’으로 페이스북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그 신뢰의 무게는 점점 더 커졌습니다. 저커버그는 이에 대응해 정책 투명성, 알고리즘 개선, 콘텐츠 모니터링 강화 등을 약속했지만 이미 신뢰를 잃은 사용자들의 시선을 돌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결국 또 하나의 큰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회사 이름을 ‘메타(Meta)’로 바꾸고,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선언한 것입니다.

 

 

3. 메타버스와 AI로 확장된 그의 비전

2021년,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의 사명을 ‘소셜미디어’에서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회사의 이름도 '페이스북'에서 ‘메타(Meta)’로 바꾸며 가상현실 기반의 디지털 세계를 다음 세대의 인터넷으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내세웠습니다. 이는 단순한 리브랜딩이 아니라, 페이스북의 정체성과 미래 전략을 완전히 새롭게 정의한 행보였습니다.

메타버스 플랫폼 ‘호라이즌 월드(Horizon Worlds)’ 개발, VR 기기인 ‘오큘러스(Oculus)’ 투자 강화, 가상 아바타, 디지털 경제 생태계 구축 등 저커버그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품는 ‘완성형 디지털 공간’을 꿈꾸고 있습니다. 하지만 초기 메타버스 반응은 기대에 못 미쳤고,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사용자 수와 몰입도는 낮았습니다.

이후 그는 방향을 조정하며 AI 기술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메타는 생성형 AI, 언어모델, 이미지 모델 등을 통해 플랫폼 내에서의 콘텐츠 생성, 검색, 추천 시스템을 한층 더 고도화하려는 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왓츠앱 모두에 AI 기능이 통합되고 있으며, AI 챗봇, 크리에이터 툴, 광고 자동화 등 비즈니스 전반에 인공지능이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저커버그의 전략은 명확합니다. ‘연결’로 시작된 플랫폼을, ‘경험’과 ‘개인화’ 중심의 기술로 확장하는 것. 그는 여전히 리스크를 감수하면서도 미래 기술에 베팅하는 모험가적인 리더십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4. 마치며

마크 저커버그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창업자이자 끊임없이 방향을 바꾸며 성장해 온 경영자입니다. 하버드 기숙사에서 시작된 ‘연결’의 아이디어는 지금도 새로운 기술과 함께 진화 중이며, 그의 다음 행보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